“건강하길 바래요”는 자연스럽게 들리는데, 왜 표준 표기는 ‘바라요’일까?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과 기본형을 규칙에 따라 활용한 표준형은 서로 어긋날 수 있다. 이 차이를 알면 소망의 ‘바라요’와 색 변화·배웅의 ‘바래요’도 가릴 수 있다.
소망의 ‘바라요’는 규칙대로 활용한 말이다
소망을 나타내는 기본형은 ‘바라다’다. 어간 ‘바라-’에 ‘-아’가 붙으면 ‘바라아’가 되고, 겹친 ‘아’가 줄어 ‘바라’가 된다. 여기에 ‘요’를 붙인 형태가 ‘바라요’다. 국립국어원 언어정보나눔터의 어문 규범 자료도 소망을 나타내는 ‘쾌차하시길 바래요’를 ‘쾌차하시길 바라요’로 고친다.
‘자라다→자라’를 나란히 놓으면 구조가 잘 보인다. ‘자라-’에 ‘-아’가 붙어 ‘자라’가 되듯이 ‘바라-’도 ‘바라’로 활용한다. 국립국어원의 「‘바라다’의 활용」은 한글 맞춤법 제34항을 근거로 이 결합을 설명한다. 같은 소망 문맥에서 과거형은 ‘바랐다’, 명사형은 ‘바람’이다.
‘하다→해요’와는 결합하는 어미가 다르다
‘하다’가 ‘해요’로 줄어드니 ‘바라다’도 ‘바래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겉모양은 비슷하지만 활용 과정이 다르다. ‘해’는 ‘하-’에 ‘-여’가 붙은 ‘하여’의 준말이다. ‘바라’는 ‘바라-’에 ‘-아’가 붙은 결과라서 그 과정에 ‘여’가 없다.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의 「[재질문] 바래요 바라요 논란」 답변은 ‘바라-+-아→바라’를 ‘자라다→자라’, ‘모자라다→모자라’와 같은 일반 활용으로 설명한다. ‘하여→해’라는 별도 축약을 ‘바라다’에 그대로 옮길 수 없다는 뜻이다. 국립국어연구원의 「누가 남의 자식을 나무라?」도 ‘자라다·바라다·나무라다’를 나란히 놓아 같은 구조를 보여 준다.
익숙함과 표준형은 같은 판정이 아니다
규칙을 알아도 ‘바라요’가 낯설게 들릴 수 있다. KBS WORLD의 「바라요, 바래요」는 소망의 뜻으로 ‘바래요’가 많이 쓰여 ‘바라요’가 어색하게 들릴 수 있다고 관찰한다. 다만 이 자료에는 조사 문항이나 표본, 비율이 없다. 어느 집단이 얼마나 쓰는지와 확산 원인까지 입증하는 자료는 아니다.
영남일보의 「[우리말과 한국문학] ‘말의 장’에서 꺼내 쓰기」는 비공식 대화에서 ‘바래요’가 친근하고 격의 없는 말투로 기능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이는 소망의 표준형이 ‘바라요’라는 규범 판정과 충돌하지 않는다. 하나는 대화에서 고르는 말투를 해석하고, 다른 하나는 표준 활용을 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친근함이 ‘바래요’ 확산의 주된 원인이라고 단정할 만한 대표성 있는 조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문장의 뜻에서 기본형을 찾으면 된다
‘바래요’라는 표기가 언제나 틀리는 것은 아니다. 색이 옅어지는 일과 가는 사람을 배웅하는 일에는 별도 동사 ‘바래다’가 쓰인다. 소망의 ‘바라다’와 기본형부터 다르다.
| 문장 | 뜻 | 기본형 | 맞는 표기 |
|---|---|---|---|
| 건강하길 바라요. | 소망 | 바라다 | 바라요 |
| 햇빛에 옷 색이 바래요. | 색이 옅어짐 | 바래다 | 바래요 |
| 친구를 역까지 바래다주었다. | 배웅 | 바래다 | 바래다주었다 |
판정할 때는 문장의 뜻을 먼저 본다. 소원을 말한다면 기본형 ‘바라다’로 되돌려 ‘바라요’를 쓴다. 색이 옅어지거나 누군가를 배웅하는 상황이라면 기본형이 ‘바래다’이므로 ‘바래요’나 ‘바래다주었다’가 맞다.
‘바래요’가 익숙한 것은 실제 말의 사용에 관한 관찰이고, 현행 표준형이 ‘바라요’인 까닭은 기본형 ‘바라다’에 일반 활용 규칙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자주 들린다는 사실만으로 표준형이 되지는 않으며, 비표준형이라는 판정이 현실에서 전혀 쓰이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