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겆다’에서 왔다는데 왜 ‘설거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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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가 옛 동사 ‘설겆다’와 관련된 말이라면, 형태를 드러낸 ‘설겆이’가 더 논리적인 표기 아닐까? 이 질문은 어원만으로 풀리지 않는다. 말이 어디에서 왔는지와 오늘날 그 말을 어떤 구조로 받아들이는지를 나눠 봐야 한다.

현재 바른 표기는 ‘설거지’다. ‘설겆이’도 표준어라는 설명은 공식 자료와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옛 어원을 무시하고 발음만 받아 적은 것도 아니다. 현대어에서 ‘설겆다’와 그 활용형이 쓰이지 않게 되면서 ‘설겆-’을 살아 있는 어간으로 분석할 근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라진 활용형에서는 어간을 찾기 어렵다

국립국어원의 『한글 맞춤법·표준어 규정 해설』은 ‘설겆어라’, ‘설겆으니’, ‘설겆더니’ 같은 활용형이 쓰이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여러 활용형에서 되풀이되는 ‘설겆-’을 현대어의 어간으로 추출할 길이 없다는 설명이다.

국립국어원 상담 사례도 ‘설거지’가 옛 동사 ‘설겆다’와 관련된 말이지만, 그 동사가 더 이상 쓰이지 않으므로 형태를 밝혀 적지 않는다고 답한다. 이 판단은 실제 용례를 거의 찾을 수 없게 된 말을 고어로 처리하고 현재 널리 쓰이는 말을 표준어로 삼는 표준어 사정 원칙 제20항의 설명과 이어진다.

여러 활용형을 가진 옛 동사 구조가 사라지고 독립 명사와 동사 구조가 남는 흐름
활용형이 사라지면서 현대어에서는 ‘설겆-’을 어간으로 추출하기 어렵다. 현재는 명사 ‘설거지’에 ‘-하다’를 붙인 구조로 분석한다.

현재 분석의 출발점은 동사 ‘설겆다’가 아니라 명사 ‘설거지’다. ‘설거지’를 ‘설겆-+-이’로 쪼개지 않고 하나의 명사로 처리하며, 동사는 여기에 ‘-하다’를 붙인 ‘설거지하다’로 분석한다. 따라서 “설거지를 마쳤다”, “그릇을 설거지한다”라고 쓴다.

옛 동사와 관련됐다는 설명도 틀리지 않다

두 공식 설명은 겉으로만 충돌한다. ‘설거지’가 옛 동사와 관련됐다는 말은 단어가 지나온 역사를 가리킨다. 현재 ‘설거지’를 ‘설겆-’에서 파생된 말로 분석하지 않는다는 설명은 오늘날의 단어 구조를 다룬다.

국립국어연구원의 「‘설거지’의 어원」에 따르면 15세기 문헌에는 현대의 ‘설거지하다’에 해당하는 ‘설엊다’ 계열이 나온다. 당시에는 식기를 씻어 정리하는 일뿐 아니라 짐이나 물건을 수습하는 뜻으로도 쓰였다. 명사 ‘설거지’는 1895년 자료에서 확인되며, ‘설거지하다’는 이 명사를 바탕으로 뒤에 생긴 말로 설명된다.

과거 문헌에 오늘날 철자의 ‘설겆다’가 그대로 있었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식 어원 해설은 이 말의 형성을 ‘설다’와 ‘겆다’의 결합으로 분석하면서도 독립된 ‘겆다’의 문헌 용례는 찾지 못했다고 밝힌다. 따라서 ‘겆다’가 곧 ‘씻다’나 ‘닦다’를 뜻했다고 확정할 수 없다.

1989년에 철자가 갑자기 바뀐 것은 아니다

검색 문서에는 변화 시점을 ‘1989년 맞춤법 개정’이라고 적은 사례가 있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의 한글 정책사 자료와 국립국어원 규정 해설이 확인해 주는 개정·고시 연도는 1988년이다. 따라서 1989년을 곧바로 개정 연도라고 부르면 부정확하다. 이번에 저장된 근거만으로는 정확한 시행일을 특정하지 않는다.

고시 연도만 보고 “그전에는 ‘설겆이’만 표준어였고 1988년에 ‘설거지’로 교체됐다”고 결론 내릴 수도 없다. 공식 어원 자료에는 19세기의 ‘설거지’가 확인되고, 20세기에는 ‘설거지’와 ‘설겆이’가 함께 쓰인 흔적이 나타난다. 실제 사용의 역사는 한 번의 규정 개정만으로 나뉘지 않는다. 1988년 이전 ‘설겆이’의 정확한 규범적 지위는 당시 사전과 규범 원문을 따로 확인해야 한다.

이 구분으로 검색 문서의 상반된 설명도 가려낼 수 있다. 요리픽의 설명은 두 표기를 모두 표준어라고 주장하지만 현재 국립국어원 답변과 충돌한다. 몬나이의 글에 나오는 ‘설거지다’와 구성 요소 풀이도 제공된 공식 국어사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반면 ithun의 규정 정리는 활용형 소멸과 ‘설거지+하다’라는 현재 분석을 공식 해설에 맞춰 소개한다.

동사가 사라진다고 표기가 자동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설거지’의 설명을 모든 파생어에 적용할 수는 없다. 이 사례에서는 옛 동사의 활용형이 사라졌고, 현재 명사가 독립된 단어로 쓰이며, 표준어 사정 원칙 제20항의 사어 처리도 함께 작용했다. 다른 말의 표기를 판단할 때는 현재 기본형과 활용형이 실제로 쓰이는지, 사전이 단어 구조를 어떻게 분석하는지, 어떤 규정이 적용되는지를 각각 확인해야 한다.

‘설겆다’가 현대어에 남아 있었다면 ‘설겆이’가 반드시 표준 표기가 됐을 것이라고도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설겆어라’, ‘설겆으니’ 같은 활용형이 실제로 널리 쓰였다면 ‘설겆-’을 어간으로 분석할 근거는 생겼을 것이다.

‘설거지’는 옛말과의 역사적 관계를 부정한 표기가 아니다. 역사적으로는 옛 동사 계열과 이어지지만, 오늘날에는 독립 명사 ‘설거지’와 여기에 ‘-하다’를 붙인 ‘설거지하다’로 분석한다. 규정의 고시 시점과 실제 표기 변화가 같은 사건인지 판단하는 방법은 ‘역활’은 1988년에 ‘역할’로 바뀌었을까에서도 이어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 자료

  1. 국립국어원 상담 사례 모음, 「‘설거지’, ‘설겆이’의 표기」
  2. 국립국어원, 「한글 맞춤법·표준어 규정 해설」
  3. 국립국어연구원 새국어소식, 「‘설거지’의 어원」
  4. 국가기록원, 「표준어 규정과 한글 맞춤법 제정 1988년」
  5. 요리픽, 「설거지 하는 법, 설겆이와 차이는? 표준어·세제·순서 완벽 10분」
  6. 몬나이, 「“설겆이”는 틀린 말! ‘설거지’가 맞는 이유와 정확한 맞춤법 정리」
  7. ithun, 「설겆이 VS 설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