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WERTY는 왜 ABC 순서가 아닐까? ‘느리게 만든 자판’의 빈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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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쓰는 키보드는 왜 ABC 순서가 아닐까? 흔히 듣는 답은 “초기 타자기가 엉키지 않도록 일부러 느리게 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허와 초기 배열을 따라가면 이 설명에는 서로 다른 세 주장이 섞여 있다.

초기 타자기의 타자봉이 충돌한 것은 사실이다. QWERTY가 충돌을 줄이는 데 유리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타자 속도를 의도적으로 낮추려고 배열했다는 설계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기계가 엉키는 문제, 배열이 그 문제에 맞았을 가능성, 사람을 느리게 하려는 목적은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처음부터 QWERTY였던 것은 아니다

1868년 Sholes, Glidden, Soule의 초기 타자기 특허는 타자봉을 원형 디스크에 방사형으로 배치하고 피아노와 비슷한 키보드로 작동시키는 구조를 설명한다. 종이 이송과 잉크 리본, 글자 간격 장치도 주요 내용이다. 특정 알파벳 배열의 선택 이유나 사람의 입력 속도를 낮추려는 목적은 나오지 않는다.

교토대 저장소의 QWERTY 역사 연구는 특허와 편지, 당시 도판을 바탕으로 1868년 피아노식 키보드부터 1870년대 배열 변화를 복원한다. 일부 배열은 현존 실물에서 그대로 읽은 결과가 아니라 연구자의 복원안이다. 그 한계를 감안해도 알파벳식에 가까운 초기 상태가 여러 번 수정됐다는 흐름은 확인된다.

Centre for Computing History가 제시한 1873년 배열에는 숫자 1과 0이 없고 R과 마침표의 위치도 현대 QWERTY와 다르다. 1878년 8월 27일 등록된 Sholes의 특허 207,559에는 현대 배열에 가까운 키보드가 나타난다. 적어도 1873년과 1878년 사이에도 글자 위치가 바뀐 셈이다.

피아노식 초기 키보드와 원형 타자봉 구조가 지그재그 연결을 거쳐 4열 타자기로 바뀌는 개념도
초기 타자기는 키의 겉모양뿐 아니라 키와 원형 타자봉을 잇는 방식도 함께 바뀌었다. 그림은 개별 글자 위치를 복원한 도면이 아니라 구조 변화를 보여 주는 개념도다.

1878년 특허가 설명하는 발명은 캐리지, 플래튼, 타자봉, 리본, 글자와 줄 간격 장치다. 도면은 배열이 존재했다는 증거지만, R을 비롯한 개별 글자를 왜 그 자리에 놓았는지는 알려 주지 않는다. 사람을 천천히 치게 하려는 목적도 특허 본문과 청구항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충돌을 줄인다고 사람이 느려지는 것은 아니다

초기 타자기에서는 여러 타자봉이 같은 인쇄 지점을 향해 움직였다. 가까운 타자봉이 연달아 올라오면 부딪치거나 걸릴 수 있었다. Buffalo History Museum의 시제품 해설SFO Museum의 전시품 설명은 자주 이어지는 글자의 타자봉을 떨어뜨려 충돌을 줄였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눈에 보이는 키의 이웃과 기계 안 타자봉의 이웃을 같다고 보면 안 된다. 초기 4열 키보드의 글자들은 원형 타자봉 바구니에 지그재그로 연결됐다. 키보드에서 나란히 놓인 두 글자가 바구니 안에서도 반드시 이웃한 것은 아니었다.

충돌 회피설에는 빈틈도 있다. Neil Kay의 QWERTY 기원 분석은 타자봉 충돌이 당시의 심각한 문제였고 1873년 배열이 그 문제를 줄이는 해법에 가까웠을 가능성을 지지한다. 그러나 설계자가 자주 쓰는 글자쌍 목록을 실제 배치 작업에 적용했다는 직접 자료는 찾기 어렵다고 구분한다. 배열의 적합성을 계산한 결과가 설계자의 의도까지 증명하지는 않는다.

충돌을 줄이는 배열은 전체 작업을 더 빠르게 할 수도 있다. 키를 빨리 눌러도 타자봉이 걸릴 때마다 멈춰 풀어야 한다면 문서 작성은 늦어진다. 걸림이 줄면 중단 시간도 줄어든다. “엉킴을 줄이려 했다”는 설명만으로 “사람을 느리게 만들려 했다”고 결론 내릴 수 없다.

전신기사와 모스 부호는 어디까지 설명할까

교토대 연구는 다른 경로를 제시한다. 초기 Type-Writer가 전신 업무와 함께 발전했고, 전신기사가 American Morse 신호를 받아 적을 때 혼동하기 쉬운 문자를 빠르게 처리하도록 일부 키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S, Z, E 등의 위치를 당시 전신 업무와 연결한다.

이 연구는 모스 부호설을 막연한 일화보다 구체적인 사료와 배열 변화에 연결한다. 그렇다고 QWERTY의 모든 글자 위치를 모스 부호 하나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연구진도 전신 업무, 숫자와 문장부호의 추가, Remington 기술진의 수정과 Sholes의 요구가 겹치면서 배열이 형성됐다고 본다. 일부 초기 배열이 사료를 토대로 복원됐다는 점도 남는 한계다.

Standards Norway의 역사 해설이 충돌 회피, 모스 부호 수신, TYPEWRITER 판매 시연을 여러 가능성으로 제시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윗줄만으로 TYPEWRITER를 칠 수 있는 배치가 우연히 나올 가능성은 낮다는 계산이 있다. 그러나 그 계산만으로 판매 시연이 실제 설계 목적이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배열을 만든 이유와 표준으로 남은 이유는 다르다

QWERTY의 최초 배치 이유는 사료가 부족해 한 문장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반면 배열이 살아남은 과정은 비교적 뚜렷하다. Remington이 Sholes 계열 타자기를 산업적으로 생산했고, 사용자들은 그 배열로 타자를 배웠다. 같은 배열을 쓰는 제조사와 숙련자가 늘수록 다른 배열로 바꿀 때의 재교육 비용도 커졌다.

Hagley Museum and Library의 역사 기록은 Remington, Caligraph, Yost, Densmore, Smith-Premier가 1893년 Union Typewriter Company를 구성하고 QWERTY를 표준 배열로 채택했다고 설명한다. 다만 이번 근거에는 당시 회의록이나 공식 채택 규정이 포함돼 있지 않다. 1893년의 한 결정이 모든 경쟁을 끝냈다고 단정하기보다, 생산과 교육, 여러 제조사의 채택이 누적되던 과정의 중요한 시점으로 보는 편이 안전하다.

Kay의 분석은 이 정착 과정을 경로 의존으로 설명한다. 이미 익힌 배열을 버리려면 사용자가 새로 연습해야 하고, 학교와 직장은 교육 방식을 바꿔야 하며, 제조사는 호환 장비를 공급해야 한다. QWERTY가 타자 속도나 인체공학의 완벽한 해법이어서 남았다고 볼 근거는 없다. 앞선 보급이 다음 채택을 쉽게 만든 쪽에 가깝다.

ABC 순서가 아닌 이유를 한 문장으로 답한다면

QWERTY는 사람을 느리게 만들려고 완성된 배열이 아니다. 초기 타자기의 기계적 제약 속에서 여러 차례 수정됐고, 전신 업무의 영향도 그 변화를 설명하는 연구 가설로 제시된다. 이후 상용화와 교육, 업계 채택이 누적되면서 표준으로 굳었다.

근거를 읽을 때는 두 시기를 나눠야 한다. ABC 순서에서 멀어진 과정에는 초기 기계의 제약과 여러 요구가 얽혀 있었지만, 개별 글자의 이동 이유가 모두 확인된 것은 아니다. 오늘까지 남은 과정에는 Remington의 보급, 숙련자의 누적, 교육과 호환성, 1893년 무렵의 업계 채택이 함께 작용했다. 충돌 문제의 실재, 충돌 회피에 유리했을 가능성, 전신 업무의 영향, 의도적인 속도 제한은 증거 수준이 서로 다르다.

배열이 굳어진 뒤 손이 글자 위치를 되찾는 방식은 별개의 질문이다. 촉각 기준점의 기능은 키보드 F·J 돌기는 점자일까?에서 이어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 자료

  1. United States Patent Office / Google Patents, 「US79265A – Improvement in type-writing machines」
  2. United States Patent Office / Google Patents, 「US207559A – Improvement in type-writing machines」
  3. Kyoto University Research Information Repository, 「On the Prehistory of QWERTY」
  4. University of Strathclyde, 「Separating Myth from Probability: The Origins and Evolution of QWERTY」
  5. The Centre for Computing History, 「Christopher Sholes invents QWERTY keyboard」
  6. The Buffalo History Museum, 「Spotlight Artifact: Sholes & Glidden Typewriter」
  7. SFO Museum, 「The Typewriter: An Innovation in Writing – Gallery」
  8. Standards Norway, 「Tastaturet」
  9. Hagley Museum and Library, 「On this date in 1878」
  10. dinsights, 「키보드 F·J 돌기는 점자일까? 문자판과 숫자판의 기준점」